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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22. 스페인·포르투갈 추방 – 세파르디 유대인의 대이동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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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스페인의 유대인 황금기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베리아반도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었어.
이슬람이 통치하던 알 안달루스 시기, 유대인들은 지식인, 의사, 천문학자, 상인으로 활약하면서 **라디노어(스페인어 기반의 유대 언어)**와 함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지.

코르도바의 칼리프 궁정에는 유대인 학자들이 있었고,
톨레도의 번역학교에서는 아랍어로 된 철학서, 과학서들이 유대인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유럽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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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대표 인물이 바로 모세 마이모니데스, 스페인 출신의 유대 철학자이자 의사였지.

이 시기 유대인은 스페인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었어.
왕궁의 세무관이나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일부는 왕의 자문 역할도 했다고 해.

하지만 이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어.

2. 기독교 왕국의 재정복과 박해의 시작

13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왕국의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가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무슬림뿐 아니라 유대인에 대한 시선도 점점 배타적으로 바뀌었지.

14세기 중반, 흑사병과 경제 불황이 덮치자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았고,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루머가 돌며 집단 학살이 벌어졌어.


1391년 세비야, 톨레도 등 주요 도시에서는 유대인 학살과 강제 개종이 대규모로 발생했고,
많은 유대인이 겉으로는 개종했지만 몰래 유대 전통을 유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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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콘베르소(converso) 혹은 **마라노(marrano)**라고 불렀어.

이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 스페인 종교재판소야.
15세기 후반, 스페인 가톨릭은 ‘진짜 개종자’를 구분하기 위해
몰래 유대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색출하고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어.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 바로...

3. 1492년 알람브라 칙령 – 추방의 날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이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그라나다를 함락한 뒤,
유대인들에게 결정적인 선고를 내려.

“4개월 이내에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을 떠나라.”

이게 바로 **알람브라 칙령(Alhambra Decree)**이야.
약 20만 명에서 30만 명의 유대인이 이 칙령으로 스페인을 떠나게 돼.
이들은 세파르디(Sefardi) 유대인이라고 불리며,
중동, 북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심지어 인도까지 흩어지게 돼.

포르투갈도 1497년 비슷한 조치를 취하면서
추방이나 강제 개종의 물결은 이베리아 전체로 확산됐어.

그렇게 한 시대의 문화와 언어, 공동체는 해체되고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장이 시작된 거야.

4. 흩어진 세파르디 – 새로운 뿌리를 내리다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향한 주요 거점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오스만 제국이야.
술탄 바예지드 2세는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스페인의 왕은 유대인을 쫓아내 우리에게 부를 안겨주었다.”

이스탄불, 살로니카(지금의 그리스 테살로니키), 스미르나(이즈미르) 같은 도시에는
라디노어로 신문을 발행하는 유대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이들은 교육, 인쇄업, 금융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에도 세파르디 공동체가 형성됐고,
중동 지역으로도 진출했어.
심지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상업과 철학, 출판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북유럽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어.

이처럼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단순한 난민이 아닌
활발한 경제·문화적 주체로서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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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방의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세파르디 유대인은 어디서든 라디노어, 특유의 음식 문화, 종교 의식을 유지하려 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스라엘 건국 이후
대부분 이스라엘이나 프랑스, 미국으로 옮겨가게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1492년 추방의 기억은 오늘날까지 ‘코끼노 디아스포라(Koferino Diaspora)’,
즉 이베리아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추방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어.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과거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세파르디 후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어.
하지만 수백 년 전 상처는 단순한 법적 보상만으로는 아물 수 없지.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대이동은
추방과 정착, 유산과 생존, 그리고 문화의 이동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이야기야.
그 안에는 아픔과 강인함, 그리고 적응이라는
유대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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