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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21. 이슬람권 내 유대인 – 비교적 관용의 시대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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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땅, 새로운 기회

중세 유럽에서 추방과 학대를 겪던 유대인들에게
이슬람 세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피난처였어.


7세기 이슬람 제국의 탄생과 함께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까지
이슬람의 깃발이 퍼지면서
유대인들은 이 새로운 세상 속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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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의 시대 이후, 이슬람 율법은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성서의 사람들(Ahl al-Kitab)’**이라 부르며
완전한 이교도가 아닌, ‘책을 가진 종교’로 존중했거든.
그래서 이들은 ‘디미(Dhimmi)’, 즉 보호받는 소수자로서
세금만 내면 종교와 생활을 자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

물론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강제 개종이나 집단 학살 같은 일은 드물었고,
자신들만의 회당, 법정, 공동체를 유지하며
문화와 신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공간이었어.

2. 알 안달루스 – 황금의 시간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이 통치하던 스페인,
즉 **알 안달루스(Al-Andalus)**야.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무려 700년 동안,
코르도바, 톨레도, 세비야 등지에는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함께 공존하는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가 있었어.

특히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눈부신 성장을 했어.
히브리어 문학, 철학, 과학, 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아랍어와 히브리어를 모두 아는 덕분에
지식의 번역가, 지식 전달자로서 활약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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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모세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5~1204)**야.
그는 히브리어 율법서를 체계화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유대교를 결합한
《미쉬네 토라》와 《지도자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지성의 업적을 남겼어.

마이모니데스는 의사이자 철학자, 율법학자였고,
이집트의 술탄을 치료한 궁중 의사이기도 했어.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슬람권의 관용과 열린 사회 덕분이었지.

3. 바그다드와 동방 유대인의 전성기

중동의 심장인 바그다드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어.
이곳은 8세기 이후 아바스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는데,
유대인 공동체는 바그다드에서
‘가온(Gaon)’ 체제, 즉 라삐들이 운영하는 학술 중심지를 세워
히브리어 율법 연구와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어.

바그다드의 유대인들은 상인, 금융인, 의사, 천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칼리프의 재무관이나 고문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어.

동시기 페르시아 지역과 예멘, 시리아, 터키 지역에도
**동방 유대인(미즈라히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전통을 계승했어.
이들은 아랍어와 히브리어, 때로는 페르시아어를 섞어 쓰며
이슬람 문명 속의 유대 문화를 만들어냈지.

4. 오스만 제국 – 환영받은 유대인

1492년, 스페인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했을 때,
가장 따뜻하게 그들을 받아준 곳은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어.
술탄 바예지드 2세는 이렇게 말했대.

“스페인의 국왕이 자신의 나라를 약하게 만들고
나의 나라를 부강하게 해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이 말처럼 오스만 제국은 스페인에서 쫓겨난 세파르디 유대인들을
이스탄불, 이즈미르, 살로니카(현 그리스 테살로니키) 등으로 이주시켰어.
그들은 **라디노(Ladino)**라는 스페인어 계통의 언어를 쓰며
오스만 안에서 상업, 외교,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지.

심지어 오스만 궁정 내에
유대인 의사나 과학자가 있는 경우도 흔했어.


또한 유대인은 **자치 공동체(Millet System)**로 인정받아
자신들만의 종교 법정, 학교, 병원 등을 운영했지.

이런 제도는 유대인의 종교적 자율성을 보장해줬고,
공존의 모델로도 자주 언급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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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용의 빛과 그늘

물론 이슬람권의 유대인 삶이
완전히 평화롭기만 했던 건 아니야.
때로는 정권의 변화나 전쟁, 종교적 열기로 인해
차별과 박해가 일어난 경우도 있었지.

예를 들어:

  • 파티마 왕조 때 카이로에서 강제 개종 시도
  • 일부 도시에서 유대인의 옷이나 표시 강제
  • 인두세(지즈야) 부과로 인한 경제 부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세 유럽과 비교하면 훨씬 관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슬람 세계는 유대 문명의 피난처이자
다시 일어설 기반이 되었던 건 분명해.

마무리

중세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이슬람권에서 상대적인 안정과 관용을 누리며
신앙과 학문, 공동체를 지켜냈어.

그들의 지식은 이슬람 문명과 융합되며
유럽 르네상스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동시에 유대 공동체의 지속성과 생존력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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