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 세계 속의 이방인
중세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계였어.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고,
모든 사회 질서와 법, 도덕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짜였지.
그 안에서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거부한 민족',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의심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어.
신학적으로도 유대인은 '하느님의 선택받은 민족이었지만,
그 선택을 거부해 저주받은 민족'으로 간주되었지.
그래서 유럽의 유대인들은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 전반에 걸친 차별을 받았어.
예를 들어:
- 교회에서 유대인을 **‘신을 거부한 자’**로 설교
- 유대인과의 결혼이나 거래 금지
- 유대인은 농지 소유나 길드 가입 금지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종교적 편견을 넘어서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유대인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구조였어.
2. 게토(Ghetto)의 탄생 – 벽 안에 갇힌 삶
‘게토’라는 단어는 원래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래했지만,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은 도시 한쪽에 모여 살아야 했어.
중세 도시에서는 유대인 지구가 따로 정해졌고,
해가 지면 외부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도 있었지.
때로는 높은 벽이 설치되어 유대인 거주 구역이
물리적으로도 ‘갇힌’ 곳이 되어버리기도 했어.
이러한 구역은 흔히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어:
- 출입구는 하나, 또는 매우 제한적
- 시장이나 예배당이 중심에 있고 주변에 주택 밀집
- 비위생적인 환경과 좁은 공간
- 도시 내 소외와 감시의 대상
게토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유대인의 고립과 차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구조였어.
하지만 동시에,
이런 공간은 유대인들의 종교, 언어, 문화가 보호되는 공간이기도 했지.
게토 안에서는 히브리어가 사용되고,
율법에 따라 생활하며, 유대인 학교가 운영되었어.
외부 세계는 적대적이었지만, 게토는 내부적으로는
작은 자치공동체로 기능하고 있었던 셈이야.
3. 반복된 추방의 역사
중세 유대인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수시로 일어나는 추방 조치였어.
정치적 불안, 경제 위기, 질병 발생 등 문제가 생기면
유대인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었지.
대표적인 추방 사건은 다음과 같아:
- 1290년 잉글랜드: 유대인 전원 추방
- 1306년 프랑스: 필립 4세에 의한 대규모 추방
- 1492년 스페인: '스페인 대추방령'으로 세파르디 유대인 이탈
- 1497년 포르투갈: 스페인을 본받아 추방령 발표
추방은 보통 재산 몰수와 함께 이뤄졌고,
유대인들은 재산을 남겨둔 채 밤새 떠나야 했어.
이로 인해 유대인 공동체는
항상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을 살아야 했지.
그런데 흥미로운 건, 많은 국가가 수십 년 뒤 다시 유대인을 초청했다는 점이야.
왜일까?
그건 유대인이 가진 금융·상업적 역량 때문이야.
기독교에서는 이자를 받는 금융업을 금지했지만,
유대인들은 이 율법에서 자유로웠고,
결국 은행가, 환전상, 세무관으로 활약했거든.
따라서 왕과 귀족들은
필요할 땐 유대인을 초청하고,
불필요하거나 위험할 땐 추방하는 식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했지.
4. 흑사병과 음모론 –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1348년, 유럽을 덮친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어.
그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원인을 찾으려 했고,
그 대상이 된 건 또 유대인이었어.
"우물에 독을 탔다",
"마녀와 손잡고 저주를 걸었다"는 황당한 음모론이 퍼졌고,
결국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하거나
추방되는 사태로 이어졌어.
특히 독일 지역과 동유럽에서는
수백 개 마을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졌고,
유대인들은 불에 태워지거나 집단으로 생매장당했지.
이 시기를 겪으면서 유대인은
더더욱 도시 외곽이나 동유럽 깊은 시골로 밀려나게 되었어.
그렇게 동유럽에는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해.
5. 교육, 글쓰기, 율법 – 끝내 꺼지지 않은 불씨
하지만 그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공부를 멈추지 않았어.
게토 안에는 토라 학교가 있고,
아이들은 3세부터 히브리어와 율법을 배웠지.
책을 읽고 해석하고, 탈무드 논쟁을 하며
정신적 훈련과 공동체 유지에 집중했어.
이러한 전통은 중세 유럽 속에서도
유대인들이 비교적 높은 문해율과 지적 자산을 유지하게 해줬고,
훗날 유럽의 금융·법률·과학 분야에서
유대인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밑바탕이 되었어.
중세 유럽의 유대인은
고립과 차별 속에서도 신앙과 지식을 무기로
정체성을 지켜내며 버텨낸 공동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