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란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성기가 찾아와.
조로아스터교를 다시 국가의 중심에 세우고,
정비된 군대와 체계적인 행정,
그리고 다시 한 번 로마와 붙는 사산 제국의 시대!
지금부터 점점 이란 역사의
후반부로 들어가는 길목이야!
이제 이야기는 이란 역사 속 두 번째 황금기,
바로 사산 왕조(Sasanid Empire)로 들어가.
이 시대는 단순한 제국의 부활이 아니었어.
문화, 종교, 군사, 행정 모든 면에서
이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마지막으로 로마와 진짜로 맞붙는,
그야말로 화려하고도 치열한 시대였지.
찬란한 황금기, 그리고 영원한 갈등의 끝자락
파르티아가 무너지고, 새 시대가 열린다
파르티아 제국은 오랫동안 버텼지만,
내부 분열과 약한 왕권 때문에
결국 힘을 잃어갔어.
그 틈을 타서 등장한 사람이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야.
그는 원래 페르시아 지방의 지방 총독,
하지만 파르티아 왕실을 무너뜨리고
기원후 224년, 당당히 새로운 제국을 세웠지.
그게 바로 사산 왕조,
이란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조직적인 국가 중 하나였어.
조로아스터교의 부활 – 종교가 곧 국가다
사산 왕조의 핵심은 단연 종교,
조로아스터교였어.
아르다시르는 제국의 중심 이념으로
조로아스터교를 다시 세웠고,
왕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라는 위치에 올랐지.
이때부터 국가와 종교가 거의
하나처럼 움직이게 돼.
사제 계급도 힘이 강해졌고,
불의 사원이 제국 곳곳에 세워졌어.
행정과 군사 – 다시 탄탄하게 정비된 제국
사산 왕조는 파르티아와 다르게
중앙집권적 체계를 세웠어.
총독들은 왕이 직접 임명,
귀족들의 독립성을 줄였고
세금, 군대, 지방 행정 모두 일원화했지.
왕권이 강해지면서 국가 운영이
효율적으로 바뀌었어.
군사력도 강화됐는데,
중무장한 기병(카타프락토이)이 핵심 전력이었고,
로마군조차 이들을 상대하기 어려워했지.
로마 vs 사산 – 끝나지 않는 대결
사산 왕조는 초반부터
로마 제국과 정면 충돌했어.
특히 샤푸르 1세(Shapur I) 때는
아예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Valerianus)를
전투에서 사로잡기도 했어.
이건 고대 로마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제가 포로가 된 사건이었지.
샤푸르는 그 황제를 자신의 승리 기념비에
무릎 꿇은 모습으로 새겨넣었고,
그 조각은 지금도 남아 있어.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동로마(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어.
이건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동서 문명의 힘과 신념의 충돌이었지.
문화의 융성 – 진짜 이란의 꽃이 피다
이 시기엔 예술, 문학, 건축, 철학 등
이란 고유 문화가 크게 발전했어.
사산 양식의 돔, 궁전, 부조 조각은
이란 건축의 전형이 됐고
조로아스터 철학과 윤리 체계는 나중에
이슬람 문명에도 영향을 줘.
당시 사산 왕조의 수도였던
크테시폰(Ctesiphon)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어.
게다가 인도, 중국, 로마, 중앙아시아와의
교역도 활발해서, 실크로드의
중심 국가 역할도 톡톡히 했지.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다
6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사산 왕조는 점점 약해지기 시작해.
왕위 계승 다툼이 잦아지고
귀족과 사제 계층은
지나치게 권력을 휘둘렀고
국가는 점점 피폐해졌어.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
7세기 초, 사산 왕조는 비잔틴 제국과
장기간 전쟁을 벌이면서
국력을 완전히 소모해버려.
그 바로 뒤에, 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세력이 등장하게 돼.
사산 왕조는 단순히 강력한 제국이 아니라,
이란 고유의 정체성, 종교, 문화를
되살린 위대한 시대였어.
이제 이란은 고대 동서양 사이에서
존재감 있는 문명 국가로 우뚝 서게 된 거지.
하지만 모든 위대한 제국처럼,
그 끝에도 역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기다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