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비 이후에도 이란은
혼란, 외침, 왕조 교체를 겪지만
다시 한 번 나라를 안정시키고
근대화로 나아가는 인물이 등장해.
그 이름은 바로 나디르 샤
그는 오히려 전통 왕조가 아닌, 무력으로
이란을 다시 통일한 영웅이었어.
혼란의 시대 속에서 무너진 이란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전설 같은 인물,
바로 나디르 샤(Nader Shah)의 이야기야.
그는 왕족도 아니고, 신분도 낮았지만
칼 하나로 나라를 되찾고, 외세를
몰아낸 진짜 전쟁의 귀재였어.
그가 등장하면서 이란은 다시 한번 힘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국가가 되지.
혼란 속에 피어난 강철 같은 리더
사파비 왕조가 무너진 뒤, 이란은 거의 무정부 상태였어
1722년, 아프간계 부족이 수도
이스파한을 점령하면서
사파비 왕조는 끝났고,
나라 전체는 지방 군벌과 외세가
들락날락하는 혼란의 시기를 겪게 돼.
북쪽에선 러시아,
서쪽에선 오스만 제국,
동쪽에선 아프간 부족,
이란 땅은 그야말로 사방에서 찢기고 있었던 거지.
변방에서 등장한 한 사나이 – 나디르
그때, 북동쪽 호라산 지역에서
한 터키계 유목민 출신의 전사, 나디르가 등장해.
그는 처음엔 산적 토벌대장 정도의 위치였지만,
탁월한 전략과 싸움 실력으로 점점
사파비 잔존 세력의 실권자로 떠올라.
그리고 그는 사파비 왕자 아바스 3세를 앞세운 뒤,
실질적인 권력을 쥐게 되고,
외침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통일 전쟁을 시작해.
외세 몰아내기 – 러시아, 오스만, 아프간을 다 쫓아낸 남자
나디르 샤는 진짜 전투의 귀재였어.
모든 전투마다 전략을 달리했고,
작은 병력으로도 큰 군대를 물리치는
기동력 중심의 전술을 펼쳤지.
- 러시아는 외교로 철수시켰고,
-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서 패하게 만들고,
- 아프간 반군은 완전히 진압했어.
그는 말 그대로 나라를 다시 통일시킨 남자,
이란의 재건자가 된 거야.
이제는 왕도 필요 없다 – 자기가 왕이 되다
1736년, 나디르 샤는 더 이상
허수아비 왕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올라 ‘아프샤르 왕조’를 세워.
하지만 그는 단순한 왕이 아니었어.
스스로를 ‘검의 왕’이라고 불렀고,
왕좌보다 군대를 더 가까이 했지.
정복전쟁의 화신 – 인도까지 점령하다
나디르 샤가 한 가장 충격적인 일은 바로
인도를 침공해서 델리를 점령한 것.
1739년, 무굴 제국이 약해진 틈을 타
북인도까지 진군, 델리에서 어마어마한
보물과 보석을 약탈했어.
그중에는 그 유명한'코이누르
(Koh-i-Noor)' 다이아몬드와
'공작왕좌(Peacock Throne)'도 포함돼 있었지.
이로 인해 나디르 샤는
'페르시아의 나폴레옹',
'동방의 전쟁 귀재'로 불리게 돼.
그러나 너무 강했던 힘은 결국 외로움을 부르게 돼
강력한 힘은 부하들과 귀족들의
질투와 두려움을 불러왔고,
나디르는 점점 의심이 많아지고,
폭력적으로 변해.
자신의 아들까지 처형했고,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숙청했지.
결국 1747년, 그는 부하 장군들에게 암살당해.
그렇게 이란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칼을
휘두른 영웅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돼.
그 뒤 이란은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돼
나디르 샤가 죽고 나자,
그가 일으킨 아프샤르 왕조는 빠르게 붕괴했고,
이란은 다시 군벌들의 각축장이 돼버려.
하지만 이때의 기억,
“우린 한때 이렇게 강할 수 있었어”라는 자부심은
이란 민족 안에 깊이 새겨지게 돼.
나디르 샤는 분명 독재자였고,
말년은 피비린내로 가득했지만,
그는 혼란과 외침 속에서
이란을 다시 강국으로 세운 인물이었어.
정통성은 없었지만,
힘과 전략만으로 제국을 움직인,
이란 역사 속 가장 드라마틱한
리더 중 한 명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