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소녀의 마지막 외침, 어두웠던 조선의 봄날
1900년대 초 조선 땅은 아주 캄캄했어.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선을 힘으로 억누르며
말도, 이름도, 심지어 나라 자체도
지우려고 했던 시절이었지.
그 시절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어.
하지만, 모두가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어.
그 중에서도 작은 체구지만
큰 마음을 가진 한 소녀가 있었지.
바로 유관순이야.
열여덟, 자유를 외친 목소리
유관순은 충청도 천안에서 태어난
총명한 아이였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고,
서울의 이화학당까지 올라가 여성 교육을 받으며
당차고 똑부러진 학생으로 자랐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지며
전국이 "대한독립만세!" 함성으로 들썩였을 때,
유관순도 그 소리에 가슴이 뛰었어.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에서 직접 만세운동을 이끌었지.
그날 모인 사람만도 수천 명.
"대한독립만세!" 그 소리에
일본 군인들이 들이닥쳤고,
수많은 이들이 잡혀갔어.
감옥에서도 꺾이지 않은 함성
유관순은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게 되었어.
거기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개 숙이지 않고,
"우리는 독립을 원한다!"라고 소리쳤어.
감옥 안에서 일본 경찰의 고문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심했지.
하지만 관순이는 끝까지 외쳤어.
"나라가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하리!"
결국, 1920년 9월 28일,
열여덟의 나이에 눈을 감았지만
그녀의 외침은 멈추지 않았어.
마치 바람이 되고, 노래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
시대를 움직인 작은 거인
사람들은 유관순을
‘조선의 잔다르크’라 부르기도 해.
비록 무기를 들진 않았지만
그녀의 외침과 용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존심과 희망, 용기를 안겨주었거든.
그녀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그 속엔 누구보다 뜨거운 정의와
나라 사랑이 있었어.
그런 마음이 모여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유관순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몰라.
"지금의 자유, 과연 잘 지키고 있느냐"고.
그 물음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
더 따뜻한 세상으로 대답해야겠지.
작은 몸에서 나온 큰 용기,
그 외침은 지금도 시간의 벽을 넘어서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