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Henry VIII)는 헨리 7세의 아들이야.
사람들은 그를 근육질의 왕, 여섯 번 결혼한 왕,
그리고 영국 국교회를 만든 왕으로 기억하지.
그가 왕이던 시기,
영국은 이제 막 중앙집권이 안착됐고
유럽 전체에선 종교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결혼 문제에서 시작된 대혼란
헨리 8세는 스페인의 공주인 캐서린과 결혼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어.
딸 메리만 있었지.
헨리는 왕위를 안정적으로 잇기 위해
꼭 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캐서린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할 상황이었고,
헨리는 새로운 여인 앤 불린(Anne Boleyn)에게 빠지게 돼.
그래서 헨리는 이혼을 결심하지.
교황의 거절, 왕의 분노
문제는 이혼을 하려면
당시 유럽의 최종 권위자인 로마 교황청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교황은 스페인 왕실의 입김을 의식해서
헨리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어.
그때 헨리는 결단을 내려.
“그래? 그럼 내가 영국에서 종교의 최고 권위가 되겠다.”
이게 바로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의 탄생이야.
헨리는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고
자신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포해.
종교 개혁? 사실은 정치 개혁
사실 헨리 8세는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 개혁가처럼
신학적으로 뭔가 바꾸고 싶었던 건 아니야.
그에게 중요한 건 “내 마음대로 이혼하고, 결혼하고, 왕권을 유지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건이 영국의 종교 구조를 바꾸는 큰 계기가 됐어.
수도원들이 해산됐고, 교회의 재산은 국유화됐으며,
성직자들도 왕에게 충성하게 되었지.
결혼, 결혼, 또 결혼… 여섯 번의 결혼
헨리 8세는 총 여섯 번 결혼했어.
- 캐서린 – 딸 메리만 낳고 이혼
- 앤 불린 – 딸 엘리자베스 낳고, 반역죄로 처형
- 제인 시무어 – 아들 에드워드 낳고 산후 합병증으로 사망
- 앤 오브 클리브스 – 초상화만 보고 결혼했다가 맘에 안 들어서 이혼
- 캐서린 하워드 – 젊고 매력 있었지만 불륜으로 처형
- 캐서린 파 – 마지막 아내로 헨리가 죽을 때까지 함께함
이 결혼들 속엔 권력 다툼, 연애 감정, 정치적 거래가 모두 섞여 있었어.
그의 유산 – 세 아이, 세 왕조
헨리 8세는 죽은 뒤에도
그의 세 자녀가 차례로 왕위를 이어받아.
- 에드워드 6세: 신교 강화를 시도했지만 젊은 나이에 사망
- 메리 1세: 엄마 캐서린의 신앙을 따르며 가톨릭 복귀 시도 → ‘피의 메리’
- 엘리자베스 1세: 다시 국교회를 안정시키며 영국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
결국 헨리 8세의 결혼과 종교 개혁은
영국 역사에 깊은 상처와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씨앗이 되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