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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 튜더 왕조의 시작과 헨리 7세의 통합 정치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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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무찌르고
헨리 튜더(Henry Tudor)가 왕이 되면서
튜더 왕조(Tudor dynasty)가 시작됐어.

 

그가 바로 헨리 7세,
그리고 이 사람은 단순히 전쟁에서 이긴 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안정시키고 회복시킨 정치가였지.

장미 전쟁의 상처를 꿰매다

헨리 7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정통성 확보였어.

 

랭커스터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는
요크 가문의 공주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두 가문을 하나로 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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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태어난 아이는
두 가문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완전한 왕”이었고, 백성들도 “이제 그만

싸우자”는 분위기로 흘러갔어.

왕권 강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헨리 7세는 절대 성급하게 굴지 않았어.


장미 전쟁처럼 다시 귀족들이 들고일어날까 봐
권력을 천천히, 확실히 자신의 손으로 가져왔지.

 

그는귀족들의 사병을 제한하고 과도한 재산을 억제하며

중산층과 상인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전략을 썼어.

 

이로써 그는 단순한 무력보다
경제와 법률, 행정으로 왕권을 다지는 데 성공했어.

경제 회복과 상업의 장려

헨리 7세는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무역을 장려하고, 상업을 지원했어.

 

특히 런던과 브리스톨, 요크 같은 도시들의 상인 계급을 밀어주면서
왕실과 시민 사이의 관계도 좋아졌지.

 

덕분에 튜더 초기부터
영국은 무역 국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

왕실 재정, 절약 모드 ON

헨리 7세는 정말 검소한 왕이었어.
전쟁도 없애고, 귀족들의 반란도 최소화하면서
돈을 아끼고 세금을 효율적으로 거두는 데 집중했지.

 

그 결과,
그가 죽을 즈음에는
왕실 재정이 튼튼해졌고,
후계자 헨리 8세는 풍족한 기반을 물려받게 돼.

정치의 달인, 조용한 개혁가

사람들은 보통 헨리 8세엘리자베스 1세처럼
강렬한 통치자를 기억하지만,
사실 그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건
헨리 7세가 조용히 판을 잘 깔아줬기 때문이야.

 

그는 정치적으로는 강인했고,
법적으로는 냉정했으며,
경제적으로는 현명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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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더 왕조의 기반이 완성되다

헨리 7세의 통치 기간은
외적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기초를 다시 세운 시기야.

덕분에 이후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같은
파격적인 군주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완성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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