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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 청교도 혁명과 찰스 1세의 처형 – 왕이 사라진 영국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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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의회가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왕이 목숨을 잃는 충격적인 시대가 열려.

 

찰스 1세(Charles I)는
아버지 제임스 1세보다도 더 강하게
왕권신수설을 믿었던 인물이야.


그는 “왕은 신의 대리인”이라며
의회의 견제를 거의 무시하고 살았지.

 

하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었고,
그의 독단적인 통치는
결국 영국 사회 전체를 분열시켰어.

의회와 충돌, 불붙는 갈등

찰스 1세는
자신의 뜻대로 세금을 걷고 전쟁을 벌이기 위해
의회 승인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했어.

의회는 당연히 반발했고,
그 결과 찰스는 11년 동안 의회를 해산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는 ‘전제정치’를 펼치게 돼.

 

하지만 세금은 더 필요했고,
전쟁은 계속됐고,
결국 의회를 다시 소집할 수밖에 없었지.

 

그게 바로 1628년 ‘청원권 선언(Petition of Right)’이야.
이때부터 왕과 의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기 시작해.

종교 갈등, 청교도의 분노

찰스 1세는 종교적으로도
가톨릭에 가까운 의식을 선호했어.

 

이건 청교도(Puritan)들에게 엄청난 반감을 샀지.


청교도는 더 간결하고 엄숙한 예배를 원했는데,
왕은 반대로 화려한 성당과 예식을 강요했거든.

 

이 갈등이 점점 커지면서
종교 문제가 정치 투쟁으로 번져가게 돼.

스코틀랜드 전쟁과 의회의 반격

찰스가 스코틀랜드에도
자신의 예배 형식을 강요하려 하면서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이 터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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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돈이 드니까
결국 의회를 다시 소집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바로 1640년의 ‘장기 의회(Long Parliament)’야.

 

이때 의회는 왕에게
“우리를 무시한 대가를 치러라!”며
강하게 맞서게 되고,
양측은 점점 전면 충돌을 향해 달려가.

내전의 시작 – 왕당파 vs 의회파

1642년, 결국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이 시작돼.

  • 왕당파(Royalists): 찰스 1세를 지지
  • 의회파(Parliamentarians): 의회와 청교도 중심

이 전쟁은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니라
나라의 방향을 결정짓는 싸움이었지.

 

의회파는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라는
뛰어난 장군을 중심으로 점점 승기를 잡았고,
1646년, 결국 찰스 1세는 포로가 돼.

재판정에 선 왕, 그리고 처형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의 국왕이 국민 법정에 세워졌어.

 

찰스는 끝까지
“나는 신이 세운 왕이다!”라며 항변했지만
1649년, 재판 결과는 사형.

찰스 1세는 런던에서 공개 처형됐고,
수천 명의 군중이 그 모습을 지켜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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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순간,
영국은 단순한 왕조의 몰락이 아닌
통치 체제 전체의 대변화를 겪게 된 거야.

왕 없는 나라, 공화정의 시작

찰스 1세의 처형 이후,
영국은 잠시 왕이 없는 나라,
즉 공화정(Republic)이 돼.

이 나라의 수장이 된 인물이 바로
올리버 크롬웰,
하지만 그가 펼친 통치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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