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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 왕정복고와 명예혁명 – 입헌군주제의 뿌리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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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건 옛날처럼 절대적인 왕이 아니었어.
영국은 이제 ‘왕이 있되, 법 위에 서지 않는 나라’가 되기 시작한 거야.

1660년, 크롬웰 사후 혼란이 커지자
사람들은 결국 왕의 아들이었던 찰스 2세(Charles II)를
다시 불러들여 왕정복고(Restoraton)를 선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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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는 왕도 함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다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지.

찰스 2세의 귀환, 그리고 타협의 통치

찰스 2세는 돌아오면서 약속했어.


“내가 다시 왕이 되긴 하지만, 옛날처럼은 안 할게.”
실제로 그는 의회와의 충돌을 피하려 했고,
가능한 한 온건하게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많았어.

 

그의 동생 제임스 2세(James II)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고

찰스 본인도 가톨릭에 약간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거든.

 

당시 영국은 개신교 중심의 국교회(성공회) 체제였기 때문에
왕의 종교 성향이 곧 나라 전체의 갈등 요소가 됐지.

제임스 2세, 왕이 되다 – 그리고 또 위기

1685년, 찰스 2세가 죽고
그의 동생 제임스 2세(James II)가 왕이 됐어.

 

문제는 이 사람이
가톨릭을 노골적으로 밀고 나가려 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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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들을 고위직에 앉히고

종교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려고 했지.

 

이건 겉으론 관용처럼 보이지만,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사회에선
“이건 우리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라며
거센 반발을 불러왔어.

명예혁명 –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왕의 퇴위

1688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져.
제임스 2세에게 가톨릭 후계자 아들이 태어난 거야.

 

영국 사람들은 “이대로 가면 영국이 가톨릭 왕조가 되겠다”
며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지.

그래서 의회는 놀랍게도
제임스의 딸 메리(Mary)와
그녀의 남편이자 네덜란드 총독이던 윌리엄(Willem of Orange)에게
“영국으로 와서 왕이 되어주세요” 하고 공식 초청을 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 왔고,
놀랍게도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제임스 2세는 도망쳐버려.

 

이걸 우리는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고 불러.

입헌군주제, 이제 시작되다

윌리엄과 메리는 왕이 되는 조건으로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에 서명해.

 

이 법은 아주 중요했어.

  • 왕은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만들 수 없다
  • 왕은 마음대로 세금을 걷거나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
  • 의회의 자유로운 토론은 침해될 수 없다

이제 영국은
“법 위에 왕은 없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게 된 거야.


그리고 이 원칙은 훗날 미국 헌법이나 프랑스 인권 선언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지.

진짜 의미의 ‘헌법 있는 왕국’이 되다

이때부터 영국은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의 길을 걷게 돼.


왕은 있지만,

그는 이제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국민과 의회 위에 설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로 바뀌기 시작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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