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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식민지] 9. 베트남과 영국 – 직접 지배는 없었지만, 세계 질서의 배경으로 작용한 힘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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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직접 베트남을 지배하진 않았지만, 그 배경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영향을 끼치고 있었어.

19세기~20세기 / 베트남 / 간접 영향, 식민 질서, 전후 재편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베트남의 식민 지배 국가는 프랑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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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19세기 중반부터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묶어서 인도차이나 연방이라는 식민지를 만들었고,
베트남은 그 속에서 고통을 받았지.

그럼 영국은 베트남과 무관했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직접 지배는 하지 않았지만,
영국은 베트남을 둘러싼 식민지 체제의 구조적인 배경이었고,
또한 영국의 세계 전략이 베트남의 운명에도 깊은 영향을 줬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경쟁

19세기 유럽 열강들은
서로 앞다퉈 아시아를 점령했어.


이 과정에서 영국은 인도, 미얀마, 말레이를 차지했고
프랑스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점령했지.

 

둘은 겉으론 충돌하지 않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누가 더 강한 제국인가 경쟁하던 시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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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영국은 베트남을 직접 노리지 않고,
프랑스의 행동을 견제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남긴 자국

프랑스는 1940년대에
일본에게 베트남을 내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베트남은 독립을 꿈꾸게 돼.

그때 베트남 북부엔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남부엔 여전히 프랑스 세력이 있었어.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이 항복하면서 그 지역의 무장을 해제할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 임무를 맡은 나라가 바로 영국이야.

영국군의 사이공 진주와 혼란

1945년, 영국군이 프랑스 요청으로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시)에 진주해.
그 이유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상은 프랑스의 식민 체제를 다시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지.

 

베트남인들은 당연히 반발했어.
영국군이 들어오고,
프랑스 군대가 뒤따라오면서,
베트남은 다시 식민지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거야.

결국 이 일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미국까지 끌어들이는 베트남 전쟁의 시작점이 돼.

영국의 간접 통치, 구조적 영향

결국 베트남은 영국에게 직접적으로 지배당하진 않았지만,
영국의 제국 전략, 식민 세계 질서 속에서
구조적으로 얽히고설킨 희생양이었어.

 

식민지를 갖지 않으면 주변 강대국에 밀리고,
식민지를 지키려다 더 큰 전쟁이 벌어지고...
그런 구조 속에서 베트남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시기를 거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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