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중반~1900년대 초 / 말레이시아 / 자원 착취와 인종 정책
말레이시아(그땐 '말레이반도'라고 더 많이 불렸지)는
원래 여러 말레이 왕국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중에서도 말라카(Melaka) 같은 도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역의 중심지였어.
처음에 말라카는 포르투갈, 그다음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고,
1800년대 초반부터는 영국이 점점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지.
고무와 주석 – 영국의 관심 포인트
영국이 말레이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단순한 '땅' 때문이 아니었어.
여기엔 유럽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자원이 있었지.
- 천연고무(Natural Rubber)
- 주석(Tin)
고무는 자동차 타이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했고,
주석은 산업 전반에서 많이 쓰였어.
그래서 영국은 말레이반도에서 이 자원들을 마음껏 채굴하고 수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연방화’와 ‘보호령 체제’를 시작했어.
‘연방 말레이 국가’의 형성
영국은 여러 말레이 왕국들을 묶어서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라 부르기도 했고,
나중에는 ‘연방 말레이 국가(Federated Malay States)’라는 형태로
행정적으로 통합해 나갔어.
하지만 왕들이 전혀 없어진 건 아니야.
겉으론 왕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모든 권력은 영국인 통치관이 쥐고 있었지.
이민 정책 – 말레이시아 사회를 바꿔놓다
말레이반도의 고무 농장과 광산은
말레이인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했어.
그래서 영국은 중국인과 인도인 노동자들을 대거 이주시키게 돼.
- 중국계 이민자: 주로 상업과 광산업에 종사
- 인도계 이민자: 고무 플랜테이션의 노동자
이런 구조는 지금도 말레이시아 사회에
‘다민족 사회의 기틀’로 남아 있어.
하지만 이건 단순한 다문화라기보단,
영국이 인위적으로 만든 인종적 분업 구조였고
이후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정치적 긴장과 불균형의 씨앗이 되기도 했어.
경제 발전, 그러나 주인은 누구였을까?
영국 덕분에 철도도 깔리고 항구도 넓어졌지만,
그건 전부 자원 수출을 위한 기반시설이었어.
말레이인들보다
영국 상인들, 중국 부자들, 인도 상류층이 훨씬 더 많은 부를 쌓았고,
현지인들은 점점 소외됐지.
말레이시아의 식민화는
겉으로 보면 '평화롭고 질서 있는 개발'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속으로는 철저히 이익을 위한 설계였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