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르는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체제는
사실 아주 오랜 시간 쌓여온 식민지 정책에서 비롯된 거였어.
19세기 초 ~ 20세기 후반 / 남아프리카 / 보어 전쟁, 광물 자원, 인종 분리
남아프리카는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영국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땅이었어.
그런데 이미 이 땅엔 네덜란드계 이주민들,
즉 보어인(Boers)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지.
영국 vs 보어 – 두 제국주의자의 충돌
영국은 남아프리카 케이프 식민지를 차지한 뒤,
보어인들이 세운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을 견제했어.
결국 1899년에 보어 전쟁(Boer War)이 일어났고,
엄청난 희생 끝에 영국이 승리,
남아프리카 전역을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게 됐지.
이때부터 영국식 지배 방식과 보어인의 차별 정책이 합쳐지면서
이 지역의 인종 분리 정책이 더욱 뿌리내리게 돼.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노동 착취
남아프리카는 광물 자원의 보고였어.
특히 킴벌리의 다이아몬드, 요하네스버그의 금광은
세계적으로 유명했지.
하지만 이 광산에서 일한 건
흑인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은 저임금, 열악한 환경, 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려야 했어.
거기다 백인 중심의 도시계획,
흑인 거주지역과 이동 제한, 교육 격차 같은 게
자연스럽게 제도화되기 시작했어.
인종 분리의 제도화 – 아파르트헤이트의 씨앗
영국은 남아프리카를 직접 통치하진 않았지만,
백인 보어 정부를 지원하면서
그들의 인종 차별 정책을 사실상 방조하거나 묵인했어.
1920년대부터 토지법, 주거법, 노동법 등
공식적인 차별법이 만들어지면서
흑인들은 점점 2등 시민이 되어갔지.
이게 나중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제도적인 인종분리 체제로 완성되게 되는 거야.
반항의 불씨
그런 가운데서도
흑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운동과 인권 운동이 커졌고,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같은 인물들이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어.
이 모든 출발점이
바로 영국 식민 지배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걸
우린 기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