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에선 흑과 백이 명확히 나뉜 구조보단,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감싸진 경제 수탈과 문화 통제가 중심이었어.
19세기 중후반 ~ 20세기 중반 / 서아프리카 / 무역 식민지, 교육 정책, 자원 수탈
서아프리카는 원래부터 무역 중심지였어.
그 전까진 노예무역이 활발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노예무역이 금지되면서
영국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지.
바로 물산과 자원 중심의 경제 식민지 전략이야.
가나 – 황금 해안에서 ‘카카오 제국’으로
가나는 원래 ‘골드코스트(Gold Coast)’라고 불렸어.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영국은 여기서 금을 엄청나게 캐갔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겨.
바로 카카오(Cacao)였어.
영국은 가나 농민들에게 카카오 재배를 장려했고,
이건 한편으론 소득원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영국 상인들이 다 사들여 수익은 본국으로 흘러들어갔어.
나이지리아 – 땅은 넓고, 자원은 풍부하고
나이지리아는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아서
영국에게 엄청난 매력이 있는 지역이었어.
여기선 피넛(땅콩), 면화, 석유 같은 자원을
영국이 싹쓸이하듯 가져갔지.
또 하나 특징은,
나이지리아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였다는 거야.
영국은 그걸 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했어.
북부 무슬림 지역은 간접통치로,
남부 기독교 지역은 선교사와 교육 중심으로 다르게 접근했지.
‘교육’이라는 이름의 통제
영국은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서아프리카에 기독교 선교사 교육을 퍼뜨렸어.
학교도 세우고, 영어도 가르치고,
서양 문화를 전파하면서 현지 엘리트들을 양성했지.
그런데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이 교육 받은 엘리트들이
나중에 독립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거든.
즉, 영국은 스스로 식민지 지배의 씨앗을 준비한 셈이야.
민족주의의 싹
가나에선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영국의 식민 통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인의 것’이라는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를 외치게 돼.
나이지리아도 점차
남북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교육 받은 엘리트들이 정당을 만들고 독립을 요구하게 돼.
이런 흐름 속에서
1957년, 가나가 아프리카 최초의 독립국이 되고
나이지리아도 1960년에 독립을 선언해.
서아프리카는
무역, 자원, 교육을 둘러싼 복합적 식민지였고,
그 안엔 착취와 함께 문화적 통제의 이중 구조가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