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자연과 자원이 풍부했지만,
식민지 시대엔 그게 오히려 재앙이 돼버렸어.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 / 동아프리카 / 분열통치, 철도, 저항
동아프리카는 처음엔 독일이 눈독 들이던 곳이었어.
특히 탄자니아(당시 탕가니카)는 독일의 식민지였지.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독일 식민지를 넘겨받으면서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당시 탕가니카) 모두 영국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돼.
영국의 방식은 ‘분할 지배’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직접 통치(direct rule)보다
간접 통치(indirect rule)를 선호했어.
현지 추장이나 왕족들을 앞세워
그들 손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 위에서 영국이 조종하는 방식이었지.
하지만 이 방식은
부족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구조를 만들었고,
현지 사회를 오히려 더 분열시켰어.
철도의 그림자
영국은 우간다 철도(Uganda Railway)를 건설하면서
내륙의 자원과 농산물을 해안까지 실어 나르려고 했어.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도계 노동자들이 동원됐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케냐나 우간다에 정착하게 돼.
덕분에 오늘날까지
동아프리카에는 인도계 상인 공동체가 뿌리내리게 되지.
하지만 이 철도는 현지인을 위한 게 아니었어.
모두 식민지 경제 시스템을 위한 것이었고,
현지인은 철도 노동자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못 받았지.
차별, 차별, 또 차별
영국은 현지인, 인도계, 백인을 계급처럼 나눠서
완전히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
예를 들어,
케냐에선 백인 정착민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현지인은 자기 땅에서 밀려나 노동자로 전락했어.
도시나 학교, 교통도
백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흑인과 아시아인은 명확히 차별받았지.
저항의 불씨
이런 차별적 구조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
케냐에선 마우마우 항쟁(Mau Mau Rebellion)이라는
무장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영국은 이걸 잔혹하게 진압했지.
우간다나 탄자니아에서도
점점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등장해서
자치권과 독립을 요구하게 돼.
결국 이 지역들은
1960년대에 하나씩 독립을 이루게 되고,
오늘날까지도 그때의 유산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