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지도는 앞 글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마라타 제국(인도)인데 1758년 기준으로
마라타 제국(Maratha Empire)의 전성기 영토를
보여주는 지도야.
진짜 이렇게 거대한 땅을 지배하고 있었고,
북쪽으로는 델리와 펀자브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어.
그런데도 1761년에 아마드 샤 압달리
(Ahmad Shah Abdali=아마드 샤 두라니:
아프간 건국자)에게 파니파트 전투
(Third Battle of Panipat)에서 참패했지.
이에 대해서 잠깐의 설명을 해보려고해.
왜 마라타 제국이 이렇게 넓었나?
1700년대 초, 무굴 제국이 쇠퇴하면서 마라타족은
남인도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혔어.
샤후(Sahu 1세) 이후,
마라타는 단일 왕국이 아니라 ‘마라타 연맹
(Confederacy)’ 형태로 여러 장군(사르다르, Sardar)
들이 분권적으로 각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어.

1750년대에는 델리를 장악하고
북인도까지 진출했어.
위 지도처럼 인도의 펀자브·오디샤·말와·
구자라트까지 지배했지.
그런데 왜 패배했을까?
1761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아마드 샤 두라니
(아프가니스탄의 건국자)에게 진 이유는,
- 보급선 문제:
- 북인도까지 너무 멀리 진격했는데, 보급과 식량 문제가 심각했어.
- 연합 부재:
- 당시 마라타는 강했지만 무굴 황제나 라자푸트 왕국 등 인근 세력과의 협조가 없었고, 오히려 적대적인 상태였어. 그래서 고립됐지.
- 아마드 샤의 동맹군:
아마드 샤는 로힐라족, 시크족 일부, 아프간 기병대 등과 함께 매우 강력한 기병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어. - 마라타군의 무리한 전투 방식:
정규군보다 기습과 기병 중심의 전투를 선호했던 마라타는, 대규모 정면전에서 불리했어.

그 결과
마라타군은 10만 이상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고,
마라타 제국의 북인도 지배력은 붕괴돼.
하지만 흥미롭게도 몇십 년 뒤 다시 재건되어,
영국과 최후까지 맞섰던 주요 세력이 돼.
무굴제국에서 영국의 지배로 넘어가는
두 시대 사이에는 사실상 약 100년 가까이
'마라타 제국'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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