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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36. ETA와 바스크 분리주의 – 무력투쟁과 평화과정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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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스페인 현대사에서 오랜 기간 상처로 남아 있었던 이야기, ETA와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이 주제는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서, 폭력과 정치, 자치와 독립, 그리고 평화와 용서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던 역사야.

 

바스크 지역과 그들의 정체성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역(Euskal Herria)**은 아주 오래된 독자 문화를 가진 곳이야. 특히 **바스크어(에우스케라)**는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서, 주변 언어들과 전혀 유사하지 않은 고유한 언어지. 이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바스크인들의 정체성과 아주 깊게 연결돼 있어.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특히 프랑코 체제 아래에서 바스크의 언어와 문화, 자치권을 억압했어. 바스크어 사용이 금지되고, 바스크 문화 행사는 검열당하고, 자치 정부는 해체됐지. 이 강압적인 억압 속에서 결국 무력 저항을 선택하는 이들이 등장하게 돼.

 

ETA의 탄생 – 무장 독립 투쟁의 시작

ETA는 1959년, 프랑코 정권 시절에 결성됐어. 이름은 Euskadi Ta Askatasuna, 즉 ‘바스크의 나라와 자유’라는 뜻이지. 초기에는 바스크어 교육, 지역문화 복원 같은 문화 운동 조직이었지만, 점점 스페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하며 무장 조직으로 변해갔어.

1960년대 중반부터 ETA는 폭탄 테러, 암살, 납치, 사보타주 같은 무력 투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어. 특히 1973년, 스페인 총리였던 카레로 블랑코를 암살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지. 그 암살은 수도 마드리드에서 차량을 공중으로 날려버릴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정권의 심장부를 공격한 상징적인 테러였어.

ETA는 이후 수십 년간, 주로 경찰, 군인, 정치인, 심지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활동을 계속 이어갔고, 스페인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어. 동시에 바스크 지역에서는 ETA를 영웅처럼 여기는 분위기와, 폭력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엇갈리며 지역사회 내부 갈등도 점점 커졌지.

민주화 이후의 대응 – 대화와 탄압 사이

프랑코 사망 이후 스페인은 민주화를 시작했고, 1978년 헌법에서 바스크를 포함한 자치 지역의 문화·행정 자치를 공식 보장했어. 바스크는 1979년에 자체 헌법을 가지고 ‘바스크 자치정부’를 수립했고, 자체 경찰력(에르차이나)과 교육 제도를 갖춘, 상당히 자율적인 지역이 되었지.

하지만 ETA는 **‘이건 독립이 아니고, 여전히 스페인의 일부일 뿐’**이라며 무장 투쟁을 계속했어. 정부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 ETA를 진압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해법을 찾으려고 간헐적으로 대화도 시도했지.

1990년대에는 정부와 ETA 간의 휴전과 재개가 반복되었고, 무장 조직 내부에서도 점차 무력투쟁 지속 여부를 두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 이 과정에서 바스크 지역에서도 폭력보다는 정치적 해법을 바라는 여론이 점점 강해졌지.

정치 세력화와 민심의 변화

ETA의 목표와는 별도로, 그들과 연계된 정치 조직들도 있었어. 대표적으로 **헤리 바타수나(Herri Batasuna)**라는 정당은 ETA와 비슷한 바스크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고, 중앙정부와의 충돌도 잦았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총이 아니라 투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ETA와 연계된 정당들도 점차 폭력과 거리를 두며 정치적으로 입지를 모색했어. 특히 바스크 자치정부가 합법적으로 기능하며 교육, 언론, 경제 정책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자, 독립보다는 자치의 강화를 선택한 주민들이 늘어나게 됐지.

 

종식 선언 – 마침내 평화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ETA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어. 유럽연합과 스페인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의 협조로 ETA 조직원 다수가 체포되고, 자금줄이 끊기고, 무기 확보도 어려워졌지. 내부 분열도 심해졌고, 더 이상 대규모 테러를 감행할 힘도 없어졌어.

그리고 마침내, 2011년 10월, ETA는 영구한 무장 해제를 선언했어. “무장 투쟁을 영구히 중단하겠다”는 발표는 수십 년 동안 폭력에 시달렸던 스페인 사회에 큰 안도감을 줬지.

이후 2018년에는 조직 자체의 해산도 공식 선언했고, 2021년에는 생존 지도부들이 바스크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어. 이는 과거의 폭력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었고, 스페인의 과거사 청산에도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지.

결론 – 고통 속의 평화, 상처 속의 치유

ETA의 역사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과 국가 통합, 폭력과 비폭력의 갈림길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야. 바스크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는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고, 스페인 사회는 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화해 왔어.

하지만 수많은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두려움 속에 살았던 시민들의 기억은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어. 스페인은 이 과거를 잊기보다는,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민주주의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방식을 택한 거지.

결국 ETA와 바스크 분리주의는 스페인 현대사 속에서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장 의미 있는 화해의 전환점을 보여준 이야기야. 완전한 치유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평화를 향한 노력’ 자체가 스페인의 성숙함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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