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의 특별한 입장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전쟁이 전 세계를 집어삼키던 시기, 스페인은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이었지만, 실상은 파시즘과 가까운 태도를 취했던 회색 지대의 나라였어. 전면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동조, 비공식 협력, 그리고 전후 전략 변화까지, 이 시기의 스페인은 독특한 외교적 줄타기를 펼쳤지.
전쟁이 시작될 때, 스페인의 상황
1939년 4월,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권력을 잡았을 때, 유럽은 이미 전운이 감돌고 있었어. 불과 5개월 후인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 그런데 스페인은 방금 전까지 내전을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경제는 피폐했고, 군대는 재편 중이었으며, 사회는 여전히 분열돼 있었어. 이런 상황에서 프랑코는 무리하게 전쟁에 개입할 수 없었지.
그래서 프랑코는 처음엔 ‘엄정 중립’을 선언했어. 이건 단순한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프랑코의 생존 전략이었지. 전쟁에 휘말릴 경우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고, 패전 시엔 정권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밀월 관계
하지만 겉으로는 중립이라 하더라도, 스페인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어. 왜냐하면 이 두 나라가 내전 당시 프랑코를 군사적으로 도왔던 주요 후원자들이었거든.
- 무솔리니는 수만 명의 이탈리아 병력을 스페인 내전에 파견했고,
- 히틀러는 게르니카 폭격 등 루프트바페의 실전 경험을 제공했지.
프랑코는 이들에게 정치적 빚을 지고 있었던 셈이야.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단숨에 점령하고 유럽 전역을 지배하게 되자, 프랑코는 이때를 기회로 생각했어. 그는 히틀러와 직접 만나 전쟁에 참전하는 조건을 협상했지. 이게 바로 유명한 **앙다이 회담(Hendaye Conference)**이야.
앙다이 회담 – 히틀러와의 갈등
1940년 10월, 프랑코와 히틀러는 프랑스 국경 근처에서 비밀 회담을 열었어. 히틀러는 스페인이 추축국에 합류해 영국과의 전쟁에 협력하길 원했고, 프랑코는 대신 모로코, 지브롤터, 알제리 등의 영토 보상을 요구했지.
하지만 이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어. 히틀러는 나중에 "프랑코와 대화하느니 이빨 몇 개 뽑는 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로 불만이 컸지. 프랑코는 결국 ‘비교우국(non-belligerent)’, 즉 실질적으로는 동조하지만 직접 참전은 하지 않는 미묘한 중립 상태를 유지했어.
청색 사단 – 중립 속의 파병
전쟁 중에도 스페인이 히틀러에게 호의를 보인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어. 바로 **‘청색 사단(División Azul)’**의 파병이야.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프랑코는 자원병 중심의 부대를 편성해 동부전선에 파견했어. 이 부대는 나치 독일 군복을 입고, 소련군과 전투를 벌였지. 명목상으로는 ‘반공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었고, 스페인은 공식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다는 외교적 선을 유지했지만, 실상은 전쟁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여한 셈이었어.
청색 사단은 약 4만 명 규모로 구성됐고, 소련의 레닌그라드 전선 등에서 격전을 벌였어. 전쟁 후반에는 국제 여론을 의식해 철수했지만, 이 사건은 스페인이 얼마나 나치 독일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야.
전후의 눈치 보기 – 급변하는 외교 전략
1943년 이후,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프랑코는 빠르게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어.
- 청색 사단을 철수시키고,
- 연합국에게 중립의 입장을 강조했으며,
- 나치와의 관계도 점점 정리해나갔지.
1945년, 독일과 일본이 패망하면서 전쟁이 끝났지만, 스페인은 파시스트 동조 국가로 간주되어 유엔 창설에서 배제되고, 국제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됐어. 미국, 영국, 프랑스 모두 프랑코 정권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보았지.
스페인 내부에서도 전후 경제는 황폐했고, 고립에 따른 경제 봉쇄와 물자 부족으로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어. 1940년대 말까지 스페인은 마치 20세기 중반의 유령 국가처럼 외면받았던 거야.
결론 – 중립이라는 이름의 외줄 타기
프랑코는 전쟁을 이용해 정권을 국제적으로 정당화하고, 생존을 도모하려는 외교적 줄타기를 시도했어. 중립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반공주의와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파시스트 세력에 동조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다시 연합국 쪽으로 외교 노선을 바꿨지.
이 시기의 스페인은 국제사회에서 정체성과 외교적 신뢰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됐고, 이는 이후 10년 이상 외교 고립과 경제 침체라는 어두운 그림자로 이어졌어.
스페인의 제2차 세계대전 시기는 말 그대로 ‘참전하지 않은 전쟁’, 혹은 **‘숨은 전선에 참여한 중립국’**의 시기였어. 파시스트 향기가 스며 있었고, 그 대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지만, 역설적으로도 전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기에 패전국으로서의 책임은 면할 수 있었던 복잡한 시대였지. 이 시기의 스페인은, 무엇보다 독재자 프랑코의 생존 본능과 국제 정세에 대한 민감한 눈치가 만들어낸 독특한 역사였다고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