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스페인 현대사에서 40년에 걸친 독재 정치를 이끈 인물,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와 그의 정권이 시작된 이야기야. 1939년 스페인 내전의 승리로 집권한 그는, 스페인을 철저하게 억압과 통제로 운영했고, 세계 2차대전과 냉전 시기를 외교적 고립 속에 버텨낸 독특한 독재자였지. 이번 글에서는 프랑코 정권의 출발과 초기 통치 방식, 고립주의 정책, 그리고 그의 권력 장악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뤄볼게.
전쟁의 승자, 국가의 유일한 통치자
1939년 3월, 스페인 내전이 국민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프랑코는 **‘국가 원수(El Caudillo)’**라는 칭호를 얻게 돼. 이는 단순한 총통이 아니라, 국가의 전 권력을 쥔 절대적 지도자라는 의미였어. 그는 스페인에서 입법, 행정, 사법, 군사, 종교 권력을 모두 한 손에 쥐게 되었지.
프랑코가 내세운 명분은 질서와 통일, 전통의 수호였어. 그는 왕정과 가톨릭 교회를 복원시키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만 움직였지.
철권 통치 – 탄압과 통제의 시대
프랑코 정권 초기의 스페인은 말 그대로 공포와 침묵의 나라였어. 그는 공화파에 속했던 이들을 **'적색분자(Rojos)'**로 규정하고 대규모 숙청에 나섰지. 수많은 정치범이 감옥에 갇히고, 공개 처형이 이어졌으며, 노동조합·정당·언론·대학은 모두 검열과 감시 아래 놓이게 돼.
- 정당 금지: 모든 정당은 해산됐고, 유일하게 허용된 조직은 **팔랑헤(Falange Española)**라는 파시스트 성향의 단일당이었어.
- 언론 통제: 신문, 라디오, 출판은 모두 국가 검열을 거쳐야만 했고, 반정부 발언은 곧바로 체포로 이어졌지.
- 교육 장악: 학교에서는 가톨릭 교리와 프랑코 체제 찬양 교육이 강제되었고, ‘국가에 충성하는 청소년’ 양성이 목표였어.
그는 말 그대로 스페인의 모든 일상을 ‘국가의 눈’ 아래에 둔 셈이었지. 게다가 지방 언어 사용도 금지됐고, 특히 바스크어와 카탈루냐어는 학교, 공공기관, 출판 등에서 사용 자체가 범죄였어. 이는 지방 민족주의 억압을 넘어, 스페인의 통일성과 권위주의를 강조하려는 시도였지.
고립의 선택 – 제2차 세계대전과 외교 전략
프랑코는 독재자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처럼 전면전에 참여하진 않았어. 그 이유는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었지.
- 공식적 중립: 스페인은 전쟁에 중립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 동조적이었어. 예를 들어, 독일에 **‘청색 사단(División Azul)’**이라는 자원병 부대를 보내 동부전선(러시아)에 파견하기도 했지.
연합국과의 미묘한 관계: 그러나 프랑코는 전쟁이 연합군에게 기울자 곧바로 친추축 성향을 숨기고, 중립을 강조했어. 이 덕분에 전후에 연합군의 군사적 보복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결과로 이어졌지.
냉전의 시작과 다시 열린 외교의 문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유엔이 설립되자, 스페인은 창립 회원국에서 제외됐어. 미국과 유럽은 프랑코 정권을 반민주적인 파시스트 잔재로 보았고, 외교적 고립은 심화됐지.
하지만 상황은 냉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게 돼. 1950년대 초,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을 준비하며 지정학적으로 유럽 남서쪽에 있는 스페인을 전략적 요충지로 보기 시작했어. 결국 1953년, 미국과 스페인은 군사·경제 협정을 체결했고, 미군이 스페인 내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게 됐지.
이후 스페인은 **유엔에 재가입(1955)**하게 되었고, 외교적으로 부분적인 복권을 얻게 돼. 다만 그 대가는 프랑코 정권을 국제사회가 묵인하게 되는 정치적 타협이었지.
프랑코 체제의 특이한 성격 – 파시스트인가, 왕정인가?
프랑코는 처음에는 파시즘 성향의 팔랑헤에 기대어 통치했지만, 점차 그들을 견제하고 자신만의 독재 체제를 만들어갔어. 그는 파시스트도 아니고, 왕정주의자도 아니고, 공화주의자도 아니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코주의’라는 독자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한 거야.
- 그는 왕정을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40년간 왕이 없는 체제를 유지했어.
- 그는 가톨릭 교회의 힘을 빌렸지만, 교회를 완전히 장악하려고도 했지.
- 그는 파시스트 조직을 앞세웠지만, 일정 시점 이후 팔랑헤를 무력화시켰어.
프랑코는 철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모든 이념과 세력을 통제하고 이용한 독재자였어.
결론 – 억압과 침묵 속에서 이어진 독재
프랑코 정권의 시작은 전쟁의 상처를 억압으로 덮는 방식이었고, 외교적으로는 세상과 등을 돌린 고립의 길이었어. 그는 스페인을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사상, 하나의 지도자 아래 두고자 했고, 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
이 시기의 스페인은 경제적으로도 침체 상태였고, 문화·사상의 자유는 얼어붙었어. 다만 냉전의 흐름 속에서 다시 국제사회로 복귀할 기회를 잡긴 했지만, 그 과정 역시 프랑코의 체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어.
이후 프랑코는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해,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스페인의 유일한 지배자로 군림하게 돼. 그의 죽음 이후, 스페인은 비로소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지만,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장에서 이어지겠지.
프랑코 정권의 시작은 단지 독재자의 등장이라기보다, 내전의 상처 위에 세워진 억압 체제의 기초였고, 스페인이 다시 빛을 보기까지 가장 어두운 긴 터널의 입구였던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