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스페인 역사에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탄생했다가, 다시 왕정이 복원되는 격동의 시기, 바로 **제1공화국과 제복고왕정(1873~1874,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이 짧지만 강렬했던 실험은 스페인이 왕 없는 국가로 살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시험해본 순간이었고, 동시에 정치적 혼란과 이념 대립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도 보여줬던 시기였어.
왕이 사라진 자리에 생긴 공화국
1868년 ‘영광스러운 혁명(La Gloriosa)’으로 이사벨 2세가 폐위된 뒤, 스페인은 잠시 왕이 없는 상태가 되었어. 이후 잠깐의 과도정부와 외국 왕을 초청한 실험(아마데오 1세의 통치)이 실패한 후, 1873년 2월, 스페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제1공화국’을 선포하게 돼.
초대 대통령은 **에스타니스라오 피게라스(Estanislao Figueras)**였고, 스페인은 이제 왕이 없는 새로운 정체 국가가 되었지만… 문제는 그 누구도 이 공화국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거였어. 공화주의자들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합의가 없었고, 나라 전체는 오히려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지.
공화주의자들의 분열 – 이상은 있었지만 현실은 무너졌어
공화국이 세워졌을 때, 정치권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었어. **중앙집권적인 공화국을 주장하는 단일파(Unitarianists)**와, **지방 분권형 연방공화국을 주장하는 연방파(Federalists)**였지. 문제는 이 둘이 너무 심하게 싸웠다는 거야.
대통령이 자주 바뀌었고, 1년 사이에 네 명의 대통령이 교체됐어. 피게라스를 시작으로, 마르갈, 살메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 욜라가 대통령직을 맡았는데, 이 중 누구도 오래 버티지 못했어. 내부 정쟁, 과격한 무정부주의 운동, 카를로스 왕당파의 반란, 그리고 식민지 쿠바에서의 독립운동까지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공화국은 마치 사방에서 불붙은 성처럼 위태로웠지.
특히 1873년 여름에 벌어진 **‘칸토날레 반란(Cantonal Rebellion)’**은 공화국을 위기로 몰아넣었어. 이건 일부 도시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칸톤(cantón, 자치지방)’을 선언하며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운동이었어. 이건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공화국 내부의 자멸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지.
군부의 개입 – 다시 군화 발자국이 들려오다
혼란이 극에 달하자, 결국 군이 다시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돼. 1874년 1월, 장군 **마르티네스 캄포스(Arsenio Martínez Campos)**가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복원시켜버렸어.
하지만 왕위로 복귀한 건 이사벨 2세가 아니라, 그녀의 아들 알폰소 12세였어. 그는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온건한 인물로, 왕정 복귀에 대한 국민 반감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지. 이렇게 해서 스페인은 다시 입헌 군주제로 복귀했고, 공화국의 실험은 겨우 11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어.
제복고왕정의 의의 – 안정을 위한 타협
알폰소 12세의 즉위 이후, 스페인은 상대적인 정치적 안정기에 들어가. **카노바스 델 카스티요(Cánovas del Castillo)**가 주도한 정치 시스템은 양당제를 기반으로 한 ‘협상 민주주의’ 체제였어. 이 시스템은 자유당과 보수당이 정권을 번갈아가며 교체하는 방식이었고, 왕실은 중재자 역할을 했지.
하지만 이건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었어. 선거는 조작되기 일쑤였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반영되지 못했어. 말하자면, 폭풍을 피해 지붕을 급하게 얹은 집 같은 안정이었지.
게다가 카를로스 왕당파의 반란은 여전히 계속됐고, 쿠바에서는 식민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스페인의 재정과 군사력은 계속 소모되고 있었어. 겉보기엔 안정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던 거야.
제1공화국의 의미 – 실패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첫 시도
제1공화국은 짧고 혼란스러웠지만, 스페인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어. 국민이 군주 없이 자신들의 대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해본 최초의 경험이었고,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공화정 운동의 기초가 되었지.
이 경험은 1931년 제2공화국이 탄생할 때도 중요한 전례로 작용했고, 스페인의 정치적 상상력 속에 ‘왕 없는 나라’라는 가능성을 남겼어. 그리고 그 꿈은 한동안 꺾였지만, 다시 살아날 때까지 스페인의 민심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거야.
이렇게 제1공화국과 제복고왕정의 시기는, 민주주의와 전통, 혼란과 타협이 부딪힌 실험의 시기였어. 왕이 없는 나라를 꿈꾸었지만 준비는 부족했고, 군의 개입은 그 실험을 너무 이르게 끝내버렸지. 그러나 그 시도는 분명히 이후 스페인의 정치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어. 실패했기 때문에 의미 없던 게 아니라, 그 실패를 통해 스페인은 진짜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