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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22. 나폴레옹의 침공과 반프랑스 게릴라전 – 스페인의 민중항쟁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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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스페인 역사에서 아주 극적인 장면, 바로 나폴레옹의 침공과 반프랑스 게릴라전 이야기를 해볼게. 이건 단순한 외세의 침략이 아니었어. 민중이 직접 들고 일어나 싸운 진짜 '국민전쟁', 즉 스페인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지키려는 치열한 항쟁이었지.

 

보르본 왕가의 몰락과 프랑스의 개입

1808년 이전의 스페인은 부르봉 왕가가 다스리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혼란스러웠어. 국왕 카를로스 4세는 무능했고, 대신이자 실권자였던 **고도이(Godoy)**는 귀족과 민중 모두에게 미움받고 있었지. 게다가 그의 친프랑스 정책은 국민 감정과 맞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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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을 타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동생을 스페인 왕으로 앉히려는 계획을 세우게 돼. 그는 포르투갈을 제압하기 위해 스페인을 지나가는 명분으로 병력을 들여보냈고, 스페인 왕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지.

1808년 봄, 바요나(바욘) 협정을 통해 나폴레옹은 카를로스 4세와 왕세자 페르난도 7세 모두를 프랑스로 데려가 퇴위시켜버렸고, 그 자리에 **자기 동생 조제프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를 왕위에 앉혔어. 이걸 두고 스페인 국민은 "우리를 팔아넘긴 왕과 우리와 상관없는 왕"이 등장한 셈이라며 분노하게 된 거야.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저항

왕실이 무너진 그 순간부터 스페인의 민중은 침묵하지 않았어.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거야. 이 날을 **‘도스 데 마요(Dos de Mayo)’**라고 부르는데, 스페인 민중 항쟁의 상징 같은 날이지.

마드리드 거리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곤봉, 칼, 심지어 손으로라도 프랑스 군대에 맞서 싸웠어. 그러나 이 무장 반란은 잔혹하게 진압됐고, 프랑스군은 시민들을 거리에서 총살했지. 스페인의 국민화가 **프란시스코 고야(Goya)**는 이 장면을 **‘1808년 5월 3일’**이라는 그림으로 남겨서, 지금도 그 충격과 분노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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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전의 시작 – 국민이 전쟁을 이끌다

프랑스군은 군사적으로 강력했지만, 스페인의 저항은 단순한 군대의 전투가 아니었어. 전국 각지에서 농민, 상인, 성직자, 심지어 여성과 아이들까지 무기를 들고 저항에 나섰지.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투가 바로 게릴라전이야. '게릴라(Guerrilla)'라는 단어 자체가 스페인어에서 왔고, 이때 처음 세계사에 등장하게 돼.

게릴라들은 프랑스군의 보급로를 끊고, 기습 공격을 퍼부었어. 낮에는 평범한 농민이지만, 밤에는 전사로 변해서 프랑스군을 괴롭혔지. 길목, 산길, 마을 구석구석에서 일어난 이 전투는 프랑스군을 피로하게 만들었고, 군사적으로 압도적이던 프랑스가 스페인 땅에서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어.

영국의 개입과 전선의 확대

스페인의 민중항쟁에 힘을 실어준 게 바로 영국의 개입이었어. 나폴레옹에 맞선 유럽 연합의 일원으로서, 영국은 **아서 웰즐리(후에 웰링턴 공작)**를 보내 스페인 북부와 포르투갈에서 프랑스군과 전면전을 벌였지.

이후 스페인-영국 연합군과 프랑스군의 전투는 **반도전쟁(Peninsular War)**으로 확대됐고,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이어졌어. 게릴라와 정규군의 협공, 국민들의 집단 저항, 프랑스군의 내부 피로가 쌓이면서 전세는 점점 스페인 쪽으로 기울게 돼.

1812년, 웰링턴은 마드리드를 탈환했고, 1813년엔 **비토리아 전투(Battle of Vitoria)**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군은 완전히 밀려나게 돼.

항쟁의 의미 – 왕을 위한 전쟁이 아닌 국민의 전쟁

이 전쟁은 단순히 왕정 복귀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어. 많은 스페인인들에게 이건 ‘내 고장을 내가 지킨다’는 민중의 자발적 투쟁이었어. 실제로 이 시기 스페인에서는 ‘국왕이 없을 때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민중 대표기구’, 즉 **후타(Junta)**라는 조직들이 생겨났고, 1812년에는 카디스에서 자유주의적 헌법까지 제정되었어.

비록 전쟁 후 왕정이 복귀되면서 이 헌법은 폐기됐지만, **이 시기의 민중 항쟁은 스페인 역사에서 최초로 ‘민이 중심이 된 저항과 정치 실험’**으로 기억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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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항쟁은 유럽 전체에 중요한 신호를 줬어. 국민이 전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이후 유럽 각국에서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데 영향을 줬지.

 

스페인을 침공한 나폴레옹은 강했지만, 스페인 민중의 분노와 집념은 그보다 더 강했어. 칼을 든 농민, 화염병을 던진 소녀, 프랑스군 식량을 몰래 태워버린 할머니까지… 전쟁은 국민 모두의 싸움이 되었고, 그게 바로 스페인의 진짜 힘이었지.

“게릴라”라는 단어는 그때 태어났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있어. 이건 왕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스페인을 지키기 위한 민중의 항쟁이었고, 그것이 스페인을 다시 일어서게 만든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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