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스페인 제국의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오게 되는 시기, 바로 펠리페 3세와 펠리페 4세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이 시기는 겉으로 보면 여전히 제국의 위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속은 피로와 균열로 가득한 시기였어. 전쟁, 재정 파탄, 외교 실패, 그리고 민심 이반까지. 스페인은 이 시기부터 점진적인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됐지.
펠리페 3세 – 정치를 맡긴 왕, 올라가는 세금
펠리페 3세는 1598년에 아버지 펠리페 2세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았어. 그런데 그는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직접 통치할 성격이 아니었지. 그래서 실질적인 정치는 **총신(寵臣) 레르마 공작(Duque de Lerma)**에게 맡겼어. 이게 바로 스페인에서 총신 정치가 본격화된 시작이야.
레르마 공작은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진 못했어. 그는 자신의 친인척과 귀족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국가 재정은 더 악화됐지.
펠리페 3세는 아버지보다 평화적인 노선을 추구했지만, 이미 유럽의 전장은 확산 중이었어. 특히 신성로마제국 내 **30년 전쟁(1618~1648)**이 발발하면서, 스페인도 자연스럽게 개입하게 됐어. 거기다 1609년엔 모리스코(개종 무슬림)의 전면 추방을 감행하면서, 농촌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돼.
모리스코 추방 – 믿음의 통일, 경제의 붕괴
펠리페 3세 치세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 중 하나는 모리스코의 추방이었어. 앞선 왕들이 무슬림을 개종시킨 후에도, 이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차별해왔는데, 결국 1609년, 이들에 대해 전면 추방 명령을 내린 거야. 30만 명 이상이 스페인을 떠났고, 특히 농촌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하락했지.
신앙의 순수성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 기반이 흔들리는 자해 행위였어. 이런 결정은 레르마 공작과 궁정 귀족들이 국민 감정과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인 조치였다는 평가도 많아.
펠리페 4세 – 예술의 후원자, 정치는 무능
펠리페 4세는 1621년에 즉위했어. 아버지보다 지적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성향이 강했지. 실제로 화가 벨라스케스, 극작가 로페 데 베가, 칼데론 등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어. 그의 통치기는 문화적으로 보면 스페인 황금기의 절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정치는 달랐어. 펠리페 4세 역시 국정 대부분을 **총신 올리바레스 백작(Duque de Olivares)**에게 맡겼고, 이 인물은 야망은 컸지만 현실 감각은 부족했어. 그는 제국을 중앙집권적으로 재편하려 했지만, 카탈루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나폴리 등 여러 지방의 반발을 부르면서 오히려 제국의 분열을 가속시켰어.
그 결과 1640년엔 포르투갈이 독립을 선언했고, 카탈루냐도 봉기를 일으켰지. 스페인은 이 반란들을 수습하느라 엄청난 국력을 소모했고, 결국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어.
전쟁과 경제 파탄 – 황금이 들어와도 가난한 나라
이 시기 스페인은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어. 30년 전쟁은 물론이고, 네덜란드 독립전쟁도 이어졌고, 프랑스와의 전쟁까지 겹쳤지. 이런 전쟁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가는 증세, 차관, 화폐 가치 절하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어.
하지만 아무리 아메리카에서 은이 들어와도, 대부분 전쟁비용과 귀족·성직자 계층에게 흘러 들어갔고, 일반 백성들은 가난에 시달렸어. 상공업은 쇠퇴했고, 토지 수익은 줄어들었으며, 도시의 인구는 감소했지.
무기력한 농민들, 파산한 상인들, 물가 폭등과 기근까지 겹치면서, 스페인 사회는 극도의 피로에 빠졌어. 제국은 크지만, 내부는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던 거야.
자부심 속의 몰락 – 황금기의 그늘
펠리페 4세는 자신이 위대한 제국의 황제라고 믿었고, 궁정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못했어. 특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게 되면서, 스페인은 유럽의 주도권을 점점 잃어가게 돼.
게다가 그의 말년에는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국력과 외교력 모두 점차 약해져 갔어. 1665년 펠리페 4세가 죽고, 병약한 아들 카를로스 2세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스페인 제국의 쇠퇴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지.
펠리페 3세와 4세의 시대는, 제국의 영광을 이어가려는 몸부림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시간들이었어. 여전히 위엄은 있었고, 예술은 눈부셨지만, 현실은 가난과 분열, 전쟁과 피로였지. 이 시기야말로 스페인이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갔는지를 보여주는, ‘황금의 껍데기 속 붕괴의 씨앗’이 움튼 시대였다고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