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베트남은 전국을 통일한
응우옌 왕조(응우옌 푹 아인)의
시대로 들어가게 돼.
이 왕조는 베트남 역사상 마지막 왕조고,
곧 서구 열강의 침략과 마주하게 돼.
응우옌 푹 아인
베트남 응우옌 왕조 제1대 황제. 프랑스의 도움을 얻어 떠이손당의 응우옌 반 냑을 물리치고 베트남을 통일했다. 도읍을 유에에 두고 하노이와 사이공을 북성, 가정성이라 칭했다. 국호를 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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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이제 우리는 베트남 역사상
마지막 왕조,
바로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시작점에 도착했어.
왕조의 첫 황제는 '지아롱제'
(Gia Long Emperor)
라는 이름(연호)을 쓰게 되는데,
Gia Long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ounding emperor of the Nguyễn dynasty (r. 1802–04) Gia Long (Chữ hán: 嘉隆) (Vietnamese: [zaː lawŋ] (North), [jaː lawŋ] (South); 8 February 1762 – 3 February 1820), born Nguyễn Phúc Ánh (阮福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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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떠이선 혁명의 여파 속에서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전국을 통일시켜
새로운 질서를 세운 인물이야.
하지만 그의 왕조는
곧 서구 열강, 특히 프랑스의 침략과
맞부딪히게 되고,
결국 베트남은 또 한 번 역사의
소용돌이로 들어가게 돼.
응우옌씨의 마지막 생존자, 아인이 다시 돌아오다
떠이선 혁명으로 응우옌씨 가문이
무너졌을 때, 응우옌 푹 아인
(Nguyễn Phúc Ánh)은 살아남았지만
정권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어.
그래서 그는 도망치고, 숨어 다니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그러던 중 그는 프랑스 선교사
피뇨 드 베하인(Pigneau de Béhaine)
과 손잡고 프랑스의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받기 시작해.
Pierre Pigneau de Béhaine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French missionary (1741–1799) Pierre Joseph Georges Pigneau (2 November 1741[3] – 9 October 1799), commonly known as Pigneau de Béhaine (French: [piɲo də be.ɛn]), also Pierre Pigneaux, Bá Đa Lộc ("Pedr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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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베트남과의 무역, 종교 확산,
영향력 확대를 원했고,
응우옌 푹 아인은 정권 탈환의 기회를 원했던 거야.
전국 통일, 그리고 응우옌 왕조의 탄생
오랜 전쟁 끝에 1802년, 응우옌 푹 아인은
마침내 떠이선 세력을 몰아내고
전국을 통일해.
그리고 스스로 지아롱제(Gia Long Emperor )
라는 이름으로 황제에 즉위하지.
이로써 수도는 후에(Huế)로 정해지고,
베트남은 응우옌 왕조(1802~1945) 아래
다시 하나의 국가로 출발하게 돼.
지아롱제의 통치 – 질서를 세우고 유교를 강화하다
지아롱제는 떠이선 혁명과
그 이전의 혼란을 정리하면서
나라 전체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오려고 노력했어.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관료제를 유교 중심으로 재편성하고,
법전을 만들고,
교육과 과거제를 다시 부활시켰지.
중국의 청나라와는 조공 외교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고, 내부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확립했어.
하지만 서구 세력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어
지아롱제는 프랑스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지만,
막상 황제가 된 뒤엔
프랑스와 거리를 두려고 했어.
그는 가톨릭을 경계했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걸 꺼려했지.
하지만 그 사이 프랑스는 베트남을
군사적·경제적·종교적으로
침투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고,
곧 베트남은 유럽 열강과
본격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돼.
지아롱제가 남긴 것
지아롱제는 혼란을 끝내고
왕조를 세운 강한 통합자였지만,
너무 보수적인 유교 질서에 의존했고,
외부 세력의 변화와 세계 정세에
눈을 감은 면도 있었어.
그의 통치는 안정을 가져왔지만,
변화와 개방에는 한계를 보였고,
그게 나중에 응우옌 왕조가
서구 열강에 휘둘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돼.
응우옌 왕조는 오랜 내전과 혼란을
끝낸 뒤 시작된 왕조였지만,
그 안정 속엔 이미 외부 침략과
내부 긴장의 씨앗이 숨어 있었어.
지아롱제는 베트남 역사에서
왕조를 세운 자로, 또한 현대 세계의 문 앞에서
문을 닫은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