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모든 시민이 주인이다"는 이상이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을 유지하는 데 현실적인 장벽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말은 오늘날 많은 나라 헌법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어.
그만큼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당연한 정치체제처럼 여겨지고 있지.
그런데 이 민주주의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시작된 걸까?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첫 출발을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로 보고 있어.
물론 그 전에도 부족 단위의 자치적 합의나 공동의결 방식은 존재했어.
하지만 체계적으로 국가의 통치 권력을 시민에게 열어준 실험은
아테네가 사실상 인류 최초라고 할 수 있지.
1. 왕도 귀족도 아닌, 시민이 직접 다스리는 도시
아테네 이전의 그리스 세계는 귀족과 왕들이 지배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상업과 무역이 발전하고,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어.
“세금을 내고, 군대에 나가 싸우는 것도 우리인데 왜 정치는 귀족만 하지?”
결국 사회 구조의 변화는 정치 참여의 요구로 이어졌고,
기원전 6세기 무렵, 아테네는 점점 귀족 중심의 통치에서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제도로 나아가게 돼.
2.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 – 민주주의의 설계자들
기원전 594년에 등장한 솔론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밑그림을 그렸어.
그는 부의 정도에 따라 시민을 4계급으로 나누고,
최상위 계급뿐 아니라 중산층과 하층민도
의회나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열었지.
그로부터 약 100년 뒤 등장한 클레이스테네스는
정치적 계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시민을 **‘지역 단위(데모스)’**로 나누고,
500인 회의제를 도입했어.
이 회의는 매년 추첨으로 선출된 평민 대표들로 구성되었고,
정책 입안과 재정 문제를 실제로 결정했지.
바로 이 제도가 오늘날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어.
3. 페리클레스 시대 – 민주주의의 전성기
기원전 5세기 중반,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이끌었어.
그는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민회(에클레시아)를 통해
국가의 모든 중대한 사안을 투표로 결정하게 했고,
관직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공무수당’을 지급했어.
“가난해서 정치에 참여 못 한다”는 불평이 없도록 한 거지.
그야말로 모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실험이었어.
4. 그러나 모든 이가 ‘시민’은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어.
“아테네의 모든 사람에게 민주주의는 열려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았어.
시민이란 성인 남성, 아테네 태생, 자유민만을 의미했어.
여성, 노예, 외국인(메토이코이)은 시민이 아니었고, 정치 참여도 금지됐지.
즉,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배제된 채 운영된 체제였던 셈이야.
이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 민주주의와는 꽤 거리가 있어.
하지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 있어선 획기적인 시작이었지.
5. 아테네 민주주의의 의의와 한계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직접 투표로 모든 사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매우 달랐어.
오늘날처럼 대표를 뽑아 대신 정치하게 하지 않았거든.
물론 한 도시국가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 걸 남겨줬어.
- 권력은 태생이 아닌 합의로 정해질 수 있다는 믿음
-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인식
- 공동의 결정은 토론과 다수결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
하지만 동시에 아테네는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줬어.
배제와 편견, 그리고 무지와 선동이 섞이면
민주주의는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남겼지.
6. 민주주의, 그 시작은 이상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완성된 체제로 생각해.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보면,
그것은 이상적인 출발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의 실험이었어.
시민의 자격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다수결은 언제나 옳은가?
소수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이 질문들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
그 말은 곧, 민주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뜻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