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영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들어가.
이건 단순한 침략이 아니라,
무역과 조약, 그리고 정치 조정을 통해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어.
그리고 그 중심에는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
이 세 도시를 묶은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
가 있었지.
18세기 후반, 영국은 인도에서 힘을 키우면서
동남아에도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어.
특히 중국과 무역하려면 동남아 항로가 필요했고,
동인도 제도(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 반도는 딱 좋은 후보지였지.
그래서 영국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방식과는
다르게, 협상과 조약, 지역 세력과의 협력을
앞세워 접근했어.
페낭(Penang)의 시작 – 1786년
영국이 말레이 반도에서 처음으로 차지한 땅이
바로 페낭섬이야.
영국인 '프랜시스 라이트(Francis Light)'가
케다 술탄과 조약을 맺고, 그 대가로 보호를
약속한 뒤 페낭을 무역항으로 만들었지.
페낭은 곧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역 거점이 되었고,
유럽, 중국, 인도 상인들이 몰려드는 국제 자유항으로
성장해.
말라카의 재편입 – 1824년
원래 말라카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지만,
영국과 네덜란드는 1824년 런던 조약을 맺어.
영국은 말라카를, 네덜란드는 수마트라(인도네시아)
를 맡기로 합의했어.
이게 바로
오늘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경계의 뿌리가 되는
사건이야. (앞 장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야!)
말라카는 다시 한 번 식민지 질서 속으로 편입됐고,
말레이 문명 중심지에서,
행정 중심지로 변화하게 돼.
싱가포르의 탄생 – 1819년
싱가포르는 원래 작은 어촌이었지만,
1819년 영국인 '래플스 경(Sir Stamford Raffles)'이
이곳에 자유항을 세우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
그는 “관세도 없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항구”
를 만들었고, 그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어.
중국 상인들, 인도 노동자들, 아랍 무역상들,
말레이 민족, 유럽 투자자들까지
모든 사람이 모이는 대규모 도시가 된 거야.
해협 식민지의 탄생 – 1826년
결국 영국은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를 묶어서
‘동남아시아의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
라는 식민 행정 단위를 만들었어.
이건 단순한 항구 도시들의 연합이 아니라,
말레이 반도 통제의 핵심축이었지.
이 해협 식민지는 무역과 통치, 조세와 행정,
군사와 정보 통신까지 영국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고,
말레이 반도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어.
말레이 세계의 변화
이 시기 말레이 지역은 이슬람 술탄국들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권한은 점점 축소되고,
영국 관리들이 사실상 실권을 장악하게 돼.
또한 중국계 노동자의 대량 이주,
인도계 이민자의 정착, 영어와 서양식 교육 제도 도입,
말레이 전통 구조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다민족 식민지 사회가 형성됐어.
해협 식민지는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근대화의 시작이자 식민 지배의 본격화를
알리는 시기였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도
행정, 언어, 도시 구조, 인종 구성을 결정짓는
뿌리가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