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말레이시아 현대사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Mohamad)의 시대를
이야기할 차례야.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를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었고,
동시에 강한 통치력과 논란도 함께한 인물이었지.
1981년, 마하티르 총리 취임
마하티르는 1981년,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로
취임하면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지도자를 보여줬어.
그는 외국 유학 경험이 있고, 기술과 산업화를
강조했고, 말레이시아의 “정체성 있는 근대화”를
추진했지.
그리고 그의 철학은 딱 한마디로 요약돼.
“Look East Policy”,
즉 “서양보다 일본과 한국처럼 살자.”
경제 개혁과 산업화
마하티르가 이끈 말레이시아는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외국 투자 유치,
국영기업 육성, 자동차 브랜드
‘프로톤(PROTON)’ 설립, 초고층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건설 등
눈에 띄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어.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동남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지.
국가 정체성 실험 – 말레이 중심의 국민 만들기
마하티르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통합도 매우 중요하게 여겼어.
그는 “말레이시아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말레이 중심의 국민국가’를 꿈꿨어.
- 이슬람 문화 강조
- 말레이어 중심 교육 강화
- NEP (New Economic Policy) 유지 및 확대
- 서양식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이건 말레이계에게는 자부심과 정체성 회복,
하지만 비말레이계에게는 배제와 소외로 느껴졌지.
정치적 통제와 언론 제한
마하티르는 강한 지도자였지만,
그만큼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어.
언론 규제, 야당 탄압, 1987년 대규모 체포
(‘라랑 작전(Operation Lalang)’),
1988년 사법부 개입 등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개발은 했지만, 민주주의는 후퇴했다”는 비판도 받았어.
대외정책 – 이슬람 세계와 아시아 리더로
마하티르는 서방 중심 외교보다는 이슬람
국가들과의 연대, 아시아 중심의 외교, 서방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특히 미국, IMF)에 집중했어.
그는 말레이시아를 “서구의 변방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의 주체”로 만들고 싶어 했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리더십 시험
아시아 외환위기 때,
말레이시아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지만
마하티르는 IMF의 긴축 정책을 거부하고,
자체 환율 통제, 자본 유출 억제 등
독자 노선을 선택했어.
처음엔 비난도 있었지만,
결국 위기를 비교적 잘 넘기면서
그의 리더십은 다시 주목받았지.
2003년 퇴임…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22년 동안 장기 집권한 마하티르는 2003년
자진 퇴임하면서 정권을 압둘라 바다위에게
넘겼지만, 그 후에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어.
그는 훗날 2018년에 다시 총리로 복귀해
말레이시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내기도 해.
이와 같이 마하티르 시대는 말레이시아를 빠르게
성장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던 시기였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민족 사회의 갈등,
민주주의와 자유의 희생, 개발 독재의 그림자도
함께 존재했지.
말레이시아는 그가 만든 시스템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가 남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