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희망 속에서도 조용히
실험실을 지킨 한 여인,
과학의 역사에 이름을 깊게 새긴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여성에게 닫혀 있던 과학의 문
옛날, 유럽의 한 나라 폴란드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라는 영리한 소녀가 태어났어.
19세기 말, 그 시절은 여자가 공부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였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대학 문턱조차 밟기 힘들었어.
그래도 마리는 포기하지 않았어.
낮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몰래
비밀학교에 다니며 지식을 쌓았지.
결국 파리로 떠나 ‘마리 퀴리’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길을 걷게 되었어.
세상에 빛을 더한 발견들
마리는 과학이 좋아서 실험실에 묻혀 살았어.
그녀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우라늄이 내는
신비한 에너지에 관심을 가졌지.
밤낮없이 실험을 거듭한 끝에,
1898년 드디어 라듐과 폴로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게 되었어!
그녀는 이 신기한 에너지를
‘방사능’이라 이름 붙였고,
이후 세상은 마리 덕분에 원자와
에너지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어.
노벨의 여왕이 되다
과학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무려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사람이야.
- 1903년, 물리학상 (피에르 퀴리, 앙리 베크렐과 공동 수상)
- 1911년, 화학상 (라듐, 폴로늄의 발견과 연구로 단독 수상)
이건 단순한 상이 아니었어.
여성에게 닫혀 있던 과학의 문을
열어젖힌 순간이었어.
그녀는 조용히, 묵묵히 실험에 몰두했지만
그 발자국은 역사에 깊고 길게 남았지.
‘빛’이었던 라듐, 그 속에서 희생된 몸
마리와 피에르는 라듐을 연구하느라
별다른 보호 장비도 없이 매일 라듐을 다뤘어.
그때는 방사능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전혀 몰랐거든.
심지어 마리는 밤에 라듐이 반짝이는 모습을
'별처럼 아름답다'고 여겼대.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숨어 있었지.
결국, 그녀는 말년에 방사능 노출로 인한
백혈병에 시달렸고, 그의 실험 노트는 지금도
납 상자 안에 보관해야 할 정도로 방사능에 오염돼 있어.
시대를 바꾼 여인
그녀의 힘은 단지 과학에서만 끝나지 않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리는 방사선 장비를 실은 차를 끌고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는 데 앞장섰지.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큐리 마차’라 불렀고,
그 속엔 생명을 살리는 휴대용 X선 장치가 있었어.
이것 덕분에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구했지.
마리 퀴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퀴리 부인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퀴리 부인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프랑스어: Maria Skłodowska-Curie, 문화어:
ko.wikipedia.org
출처: 위키백과
마리 퀴리는 누가 봐도 대단한 과학자였지만
그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어.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어.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뿐입니다.”
마리는 방사능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었고,
그 안에 담긴 위험조차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감수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