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9세기 중반 남북 전쟁 상황이야.
북부에는 그랜트가 있었다면
남부에는 로버트 E. 리 장군이 있었어.
연방군에서 장군직 제안까지 받았지만
고향인 버지니아를 위해 남부를 선택했어.
로버트 리는 수세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술의 귀재로 통했지.
비록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품위 있게 항복한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어.
남부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수많은 전투를
이끌며 북군을 번번이 곤란하게 했어.
전술적 천재로 평가되며,
대표적인 전투는 제2차 불런 전투와
프레데릭스버그 전투.
전쟁 말기, 보급과 병력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항복을 선택.
무의미한 희생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지.
“나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
당시 링컨 대통령은 로버트 E. 리에게
북군 총사령관 자리를 제안했어.
하지만 리는 고민 끝에 거절했지.
“나는 이 나라에 충성합니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제 고향입니다. 고향을 배신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북군의 적장이자,
남부연합군의 수장이 되었어.
참 아이러니하지?
게티즈버그의 패배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
게티즈버그 전투(1863).
리 장군은 북쪽 영토를 공격하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지만,
결과는 남부의 대패.
전투 후 그는 이렇게 말했어.
“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패배를 부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 군인으로서 진짜 품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
항복, 그리고 진짜 승리
1865년, 결국 리 장군은 버지니아 주
애퍼매턱스에서 항복해.
그 순간, 북군의 그랜트 장군은 놀라울 정도로
예우를 갖춘 항복 절차를 제공했어.
리 장군의 인격을 존중한 거야.
항복 후, 리는 남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싸우지 마라"고 말하며 화합을 선택했지.
패장은 되었지만, 그의 선택은 미국의
통합을 위한 첫걸음이었어.
그는 가장 힘든 선택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지.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는 전쟁의 상징이자 인간적인 리더로
기억되고 있어.